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라위 왕조 (문단 편집) === 건국 === [[파일:모로코 알라위 1.jpg]] 시질마사 ([[리사니]])에 남아있는 알라위 왕조 초기 수도 유적 알라위 가문은 12-13세기 무렵 그들의 존재로 인해 은덕을 입길 원하던 동부 모로코 타필랄트(시질마사) 지역민들의 초대를 받아 [[히자즈]]에서 이주해왔다. [* 이는 비슷한 시기 남부 수스로 이주한 사드 왕가와 비교된다.] 15세기 그 지도자인 알리 앗 샤리프가 세우타, 탕헤르에 대한 '성전'에 참가하고 [[그라나다(스페인)|그라나다]] 측의 초대로 카스티야에 대한 전투에 참가하며 알라위 가문은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었다. 17세기에 이르면 알라위 가문은 시질마사의 주요 세력들 중 하나로 부상해있었고, 1589년 알리 앗 샤리프의 5대손인 샤리프 이븐 알리[* 본명은 알리인데 부친과 헷갈려 그냥 샤리프라 불렸음]가 시질마사에서 태어났다. 당시만 해도 사드 왕조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10여년이 지난 후부터 쇠퇴하기 시작, 1630년에 이르면 페스-마라케쉬 일대를 제외한 해안과 내륙 지방 각지에서 독자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다. 서쪽부터 살레-라바트의 부레그레그 공화국, 북부 리프 지방의 무함마드 알 아야쉬, 중부 산악 지방의 딜라이 수피 공동체 (자위야 딜라이야), 남부 수스 지방의 아부 하산 알리 앗 시믈알리 등이었다. 그중 앗 시믈알리와 딜라이 세력이 시질마사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는데, 현지인들은 샤리프를 술탄으로 추대하여 맞섰다. 1635년 샤리프는 앗 시믈알리의 수비대가 있는 타부삼트를 공격했으나 패하였고, 사로잡혀 수스 협곡으로 유배되었다. 다만 고귀한 혈통을 해치기보다 동맹으로 삼으려 했던 앗 시믈알리는 흑인 첩을 선물하는 등 잘 대해주었다. 한편 샤리프가 부재한 시질마사에서는 그의 장남 시디 무함마드가 지휘권을 이어받아 재차 봉기하였고, 1641년 앗 시믈알리의 병력을 축출한 후 술탄을 칭하였다. 하지만 1648년 이번에는 딜라이야 군이 침공하여 시질마사 남쪽과 서쪽의 영토를 빼앗았다. 무함마드는 모로코 북부 대부분을 장악한 달라이야와 맞서는 대신 반대쪽인 동북쪽, 즉 오스만령 알제리 방면으로의 확장에 나섰다. 1650년 그는 알제리 중북부 아그와트와 [[틀렘센]]까지 공격하였고, 바누 마킬을 포함한 아랍 부족들을 포섭한 후 [[우지다]]를 새 근거지로 삼았다. 알라위 군의 공격에 대응한 오스만 제국은 반격에 나서 그들을 시질마사까지 몰아낸 후 협상, 다시 국경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휴전하였다. 비록 영토는 크게 늘지 않았지만 많은 아랍 부족 병력을 확보한 무함마드는 모로코의 주요 세력들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